2012 지금은 여행중 /10월 터키

<터키 배낭여행 6> 터키의 눈 , 푸른 부적. 나자르 본주우

프리 김앤리 2011. 7. 12. 07:00

 

 

터키를 여행하다보면 누군가 나를 노려보고 있는 듯한 강렬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그것의 실체는 파란 유리구슬. 아주 강렬한 코발트 빛이다.

사람의 눈동자를 닮은 검고 푸른 무늬가 가운데 박혀있어 온몸으로 그 시선을 받는 느낌이다.

아이들 옷에 달려있기도 하고 집 대문에, 식당의 벽에  걸려 있기도 한다.

버스에도 택시에도 어김없이 백밀러 아래로는 푸른 눈동자의 유리구슬이  달랑거리기고 있다..

푸른 눈알의 이 유리구슬은 팔찌에도 있고, 목걸이에도 있다.

선물용 가게에 들어가면 온통 이 푸른 빛깔 때문에 눈이 부시기도 한다.  

푸른 눈동자 구슬의 이름은 나자르 본주우(Nazar Boncuğu)다.

 

'나자르 본주우', 시선의 유리구슬이라는 뜻이란다.

일명 악마의 눈이라고도 한다.

터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질투의 시선을 받으면 불길하다고 느낀단다.

그래서 터키 사람들은 질투의 시선을 방어하기 위하여, 그 불길한 시선을 반사하기 위하여

코발트 빛의 나자르 본주우를 주변에 걸어놓는다.

일종의 전 국민적 부적인 셈이다.

 

이슬람에서 푸른 빛은 영원을 뜻한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무슬림들에게 푸른 눈은 액운을 가져온다는 믿음이 전해져왔다.

무슬림들에게 액운을 가져다주는 푸른 눈은 과연 누구였을까?

‘푸른 눈알’ 을  가진 사람들은 다름이 아니고 푸른 눈에다 흰 피부를 가진 유럽 사람들이었다.
중세 유럽 이슬람 지역을 침공해 온 '십자군'의 눈은 아시아쪽 혈통을 가진 자신들과 다르게 푸른 눈이었다.

성전을 탈환한다는 명목으로 잔인한 폭력을 가한 푸른 눈을 악마의 눈으로 본 것이었을까? 

이들은 더 강렬한 푸른 빛 눈동자의 유리구슬을 만들어 푸른 눈들의 침입을 반사시키고자, 막아내고자 국민 부적을 만든 것이다.

마치 귀신을 막겠다며 문지방에 붙여놓은 우리나라 붉은 부적과도  같은 의미?

(나는 사실 귀신보다도 그 붉은 부적이 더 무서웠다.

 어릴적 시골 할머니집에서 자다가 문득 깬 내 눈에 그 붉은 부적은 얼마나 무서웠던지...)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같은 이야기다.

 

이제는 유럽 공동체의 한 멤버, EU의 일원으로 가입하고자 그렇게 열망하고 있는 터키 사람들이

여전히 푸른 눈을 가진 유럽 사람들이 가져올 액운을 쫓고자 걸어놓는 부적이라고 믿기에는 뭔가 좀 미심쩍다.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이 사람들의 푸른 부적은 여전히

팔찌, 목걸이의 장신구가 되어, 벽걸이 등의 장식품이 되어 터키의 색으로 사랑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어쩌다 나자르 본주우가 깨지면 이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닥칠 액운을 막아줬다고 기뻐하며

(우리로 치자면 딱 액땜이다.) 다시 새로운 나자르를 구해서 자신들의 가까이에 둔단다.

강인한 믿음이요, 까닭모를 안심인 것이다.

 

하여튼 이 사람들의 나자르 본주우에 대한 사랑은 대단하다.

 

나도 몇번은 이걸 선물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귀걸이를 사러 들어간 괴레메의 조그만 가게.

마침 주인이 우리가 묵고 있던 호텔의 아침을 차려주는  낯익은 아줌마였다.

아침에는 호텔에서 일을 하고 낮에는 아저씨와 함께 그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냥 값싼 귀걸이를 한쌍 샀을 뿐인데

그래도 아침마다 만나는 인연이 좋았던지 애플티는 당연하고,

이 푸른 유리구슬의 장식품을 선물로 받았다.

'당신에게 행운을 빈다'며...

그래... 이제는 이 푸른 구슬이 단순히 액운을 막는다는 방어적인 의미보다는

상대방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행운의 상징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2년 이스탄불의 어느 거리에서 만났던 할아버지.

혼자 여행하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그 때 나는 그가 나에게 의도적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했었다. )

어디서 왔느냐고, 한국에서 왔느냐고, 당신은 한국인을 정말 사랑하노라고...

한참 손녀뻘 되는 나를 이끌고 슐레마니아 사원도 구경시켜주고, 이집션 바자르도 구경시켜줬던 할아버지.

영어로 된 문장을 한국어로 가르쳐 달라며 이것 저것 물으시며 나를 반나절이나 데리고 다니셨던 분.

이 할아버지가 도대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슨 꼼수가 있는 건지, 무슨 반전이 기다리고 있는건 아닌지...

겉으로는 웃으면서 한쪽으로는 내내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 꼼수도 반전도 없이 비좁은 골목길을 따라 애미노뉴 항구까지 나를 무사히 데려다 준

할아버지는 진짜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내며 나에게 작별을 했다.

"너는 나의 한국 딸이다. 기억해라. 다시 네가 이스탄불에 온다면 반드시 우리 집에 놀러와야 한다"는 말까지 전하고서.

친절한 할아버지를 내내 의심하고 있었던 순수하지 못한 나를 발견했을 때는

이미 할아버지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이후였다.

내손에는 그가 내게 전해준 자신의 집 주소와 플라스틱으로 만든 푸른 빛의 나자르 본주우 팔찌만이 남아있었다. 

 

슐레마니아 사원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나는 이 사진을 결국 할아버지께 전하지 못했다.

 그 때 생각으로는 내가 다시 터키를 여행할 것이라는 건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가 자신의 이스탄불 주소라며 건네준 꼬깃꼬깃 종이 쪼가리는 한국에 돌아와서 금방 정리해버렸다.

 메일 주소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딱히 다른 방법으로 사진을 전달할 방법도 없었고.

 그래도 플라스틱으로 만든 나자르 본주우 팔찌만은 내내 서랍속에 모셔져 있었다.

 플라스틱 구슬들을 고무줄에 끼워 만든 아주 허접한 팔찌라 실제로는 한번도 착용한 적도 없었지만 

 몇년동안 수도 없이 책상을 정리하면서도 그 팔찌만은 버리지 못했다. 

 팔찌를 볼때마다 나는 인자했던 터키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행복해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나를 미안해 했다.

 그런데 이 행복조차 아마 지난 2년간의 세계여행을 준비하며 온 집안을 다 정리할 때 결국 버렸나 보다.

 후회가 된다.

 그건 그대로 뒀어야 하는건데...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데... 이 할아버지는  아직도 살아계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