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지금은 여행중 /10월 터키

<터키 배낭여행 8> 해질녁 파묵칼레

프리 김앤리 2011. 7. 15. 06:00

나른한 나르길레의 추억이 있었다는 그날 저녁 바로 직전의 이야기다.

 ( ☞ 나른한 나르길레의 추억 ; http://blog.daum.net/freeleeandkim/869 )

 

그날 나는 파묵칼레에 올랐다.

 

2002년 월드컵의 흥분이 막 끝난 8월, 나는 그 때 터키로  여행을 떠났다.

아무리 도망쳐도 달아날 수 없었던 보충수업을

이리저리 막 땡겨서 뭉치고 한데 몰아 후다다닥 끝낸 뒤 나는 터키로 떠났다.

더운 여름, 여전히 학교에서 끔찍한 보충수업을 하고 있는 우리반 애들에게

'내가 없어도 열심히 학교를 다니라'는  격려 반,

'내가 없다고 학교를 땡가 ~ 먹으면 돌아와서 용서 하지 않으리라'는 협박 반

무책임하면서 근엄한 척 한마디 말을 던져버리고 나의 방학을 즐기러 떠났다.

내심 마음 한 구석에는 학교 공부건, 무엇이든지 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가장 올바른 삶의 자세라는 내 철학을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에게도 적용시키고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는 자에게는 그 나름의 보람찬 미래가

열심히 논 자에게는 또 그 나름의, 비참하던지 혹은 전혀 다른 즐거운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내 신념에 한치의 의심도 없이....

 

하얀 목화의 성, 파묵칼레에 들어가서 나는 인생의 즐거움에 만세를 불렀다.

 

누구는 파묵칼레는 가봤자 실망이라며 가지 말라고 했다.

여러 가이드북에서도 그랬고, 내가 눈여겨 보며 정보를 얻었던 까페에서도 그랬다.

간혹, 아주 간혹 파묵칼레는 참 멋있었노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개똥 같더라는 여러 사람들의 충고를 뒤로 하고, 아주 아름다웠던 몇몇 소수 사람들의 의견을 나는 따랐다.

얼마 안되는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들이 받았던 흥겨움을 가지고 싶었다.

당연히 내 여행일정에서 파묵칼레는 들러야 하는 곳이었고,

그 곳에 도착해서는

눈이 부시도록 찬란한 태양과 그 태양빛에 빛나는 푸른 빛의 온천물에 나는 흥분했다.

아무리 몇몇 안된다고 하더라도  여행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의 선택을 따랐다는 것은 확실히  탁월한 선택이었다.

 

도대체 누가 이 장면을 보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삐죽거릴 수 있었단 말인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장면을 보고 실망이라고 파묵칼레를 폄하할 수 있었단 말인가?

 

태양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 파묵칼레 석회붕의 물은 색깔까지 달리하며 나를 흥분시켰다.

인공으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어떤 곳에서도 저런 색깔의 물을 만날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나는 그날 아주 늦은 시각까지 파묵칼레의 꼭대기에서 놀았다.

우연히 만난 한국 여자애 둘은 저녁 버스를 타고 에페소로 가야 한다며 진작에 떠나가버리고

나만 홀로 그 위를 서성거리고 있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낮과는 또 다른 파묵칼레가 펼쳐지고 있었다.

 

저녁 햇살을 담은 호수(?)가 일렁이고 있었다.

혼자 떠나온 여행, 정상대로 하자면 나는 외로움에 떨어야 했다.

심심함에 미쳐야 했고, 옆구리가 텅 빈 것같은 허전함으로 몸서리쳐야 했다.

그러나 외로움이나 허전함 때문에 내가  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아름다운 장면을 나 혼자 보고 있다는 미안함이 더했다.

이런 경이로운 장면을 다음에는 언젠가 함께 봐야 겠다는 다짐만이 새록새록 솟아나고 있었다.

한국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남편 생각과

무더운 여름날 교실에 바글바글 모여 있을 아이들 생각이 가득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쉴새 없이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어차피 나는 오늘 야간버스를 타야했다.

해가 다지도록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낮동안 그렇게 북적거리던 사람들은 거의 다 내려가고 파묵칼레는 몇몇 남은 사람들 만의 몫이엇다.

그 사람들만이 해질녁의 파묵칼레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더해지는 행운.

파묵칼레를 지키고 있던 관리인(?)이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은 걸 확인하고 난 뒤

자신을 따라 오란다.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남아있던 우리들은 그의 뒤를 따랐다.

온천이 흐르는 어느 지점에 나무판을 갖다대자  이전에 내려오던 물줄기가 갑자기 방향을 바꾼다.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던 우리들을 관리인은  다시 인도한다.

자신만을 따라오라며....

이미 서산의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폭포다.

자연 폭포다.

파묵칼레의 온천수가 만들어놓은 폭포다.

방향을 바꾼 물줄기가 한쪽 비탈 아래로 폭포가 되어 떨어진다.

사람들은 서둘러 윗옷을 벗어던지고 그 아래로 들어갔다.

남아있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뜻밖의 행운이었다.

미처 수영복을 차려 입지 않았던 나는 그들의 물놀이에 비스듬히 끼어들어본다.

비록 끼어들지 밖에 못했지만 깔깔깔거리는 그들의 웃음소리는 함께 나누고 있었다.  

 

다른 한쪽의 프랑스 애들의 웃음소리는 더 요란했다.

마치 저녁이면 이곳에서 벌어지는 폭포 놀이를 미리 알고 있었던 것 처럼 물맞이를 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리고는 나에게 손짓을 했다.

사진 한장 찍어달라고...

바로 전날 카메라를 잃어버려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며...

내가 그들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깔깔깔깔....

젖은 손으로 그들은 내 노트에 자신들의 메일 주소를 적어줬고

여행을 마치고 한국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 나는 그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Can you remember me?

 We met at Pamukale..... "

깔깔깔 거리던 파묵칼레의 사진과 함께 , 그 때 함께 보았던 그 노을빛의 추억을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