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지금은 여행중 /10월 터키

<터키 배낭여행 7> 나른한 나르길레의 추억

프리 김앤리 2011. 7. 13. 06:00

한국말로는 물담배, 영어로는 Water Pipe, 이집트에서는 시샤라고 하는 것.

터키에서는 나르길레라고 부른다.

 

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나른한 오후, 노천까페의 한 귀퉁이 편안한 쿠션 의자와 여자들의 수다,

눈썹짙은  할아버지들의 웅성거림...터키식 물담배 나르길레와 함께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어느 책에서 읽은 이야기다.

'미국의 뉴욕이나 워싱턴의 중심가에서 가장 현대적인 사람은

타임지 또는 뉴스위크지를 읽으며

식사 때는 한국의 김치를 먹고 식사후에는 터키의 물담배 나르길레를 피는 사람이다'.

 

아메리칸 커피나 이태리식 커피에 익숙한 사람이

긴 파이프로 된 물담배를 피는 것은 역사와 풍류를 즐기는 과시의 한 표현이라는 것.

독특한 풍미를 갖춘 김치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인 한국의 상징이며,

다양한 맛과 색깔로 풍류를 즐길 수 있는 나르길레는

광할한 땅을 지배하고 한 시대 역사의 주인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상징이라는 것.

 

먼저 호리병 처럼 생긴 화려한 장식의 유리병에 물을 채우고 

사기 깔때기 같은 곳에 담배를 넣고 쿠킹호일로 감싼 뒤에

그 위로 석탄 태운 조각을 올려놓고 긴 파이프를 깊게 빨아들이면

호리병 속에서 뽀르륵 물소리가 나면서 연기를 들이마시게 된다. 

담배라고 하는 것의 주 원료가 니코틴이 아니라 딸기나 사과 같은 천연 과일을 절인 것이기 때문에

나르길레가 내뿜는 연기에서는 사과향이 나고 딸기향이 난다.

 

담배에 관한 한  마치 법적으로 성인 남자들만에게만 하사된 특권인 것 처럼 폼잡는 한국 사회에서는 

그것이 니코틴이 있든 없든, 사과향이 나든  딸기향이 나든

연기를 빨아들이고 연기를 내뿜는 것은 오로지 담배를 피우는 행위로 비춰질 것이다. 

물론 요즘은 아주 많이 달라져서 실내 공간은 물론 거리와 같은 공공연한 장소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을 노출시키면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들이 많아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터키에서는 달랐다.

이란에서도 양탄자 무늬의 푹신한 의자에 앉아 물담배를 나눠피는 여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시리아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이집트에서도 그랬다.

부르카를 뒤집어 써야 하고 차도르를 둘러 다른 남자들에게는 자신의 머리카락조차 보이지 않도록

꽁꽁 싸매고 있는 이슬람의 여성들에게는 그냥 물담배도 그냥 하나의 기호품에 지나지 않았다.

사회 관습으로 굳어져 있는 남녀의 문제는 아니었다.

여자를 차별하고 여자의 인권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생각했던 이슬람에 대한

나의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낯선 곳으로의 여행, 언제나 낯선 것과 만났고 새로운 경험과 충돌했다.

2002년 혼자 터키를 여행했을 때 나르길레를 아무렇지도 않게 피우고 있는 터키의 여자들은 내게 낯선 충격이었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시계 방향으로 터키를 여행하기를 거의 이십여일째.

그래도 나는 한국의 관습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기웃거리기만 했다.

뭐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것이 배낭여행이라고 줄창나게 떠들고 다녔으면서도

오랜 세월 한국 사회의 눈초리에 길들여있던 나는 저들의 느긋함을, 저들의 자유를 힐끗거리기만 했다.

정작 본인들은 이것을 반드시 쟁취해야 할 자유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는데

그저 자기들이 살아온 방식대로 생활하고 있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터키 여행의 끝이 다 되 갈 무렵, 야간버스를 기다리던 파묵칼레의 저녁이었다.

이제 이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로 다시 들어가면 이틀후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저녁 10시도 넘어야 떠난다는 야간버스, 몸은 피곤해져 오지만

방금 보고 내려온 파묵칼레의 붉은 노을로 마음은 들뜰대로 들떠 있었다.

커피를 한잔 시켜놓고 앉아있는 까페안에서 향긋한 헤이즐럿 향이 났다.

분명 내 커피는 쓴 터키 향기뿐인데... 

마주 앉은 커플이 내게 미소를 보낸다.

하나의 파이프로 서로 나눠가며 나르길레를 빨아당기며 연기를 내뿜었다. 

그들에게서 헤이즐럿 향기가 났다.

 

"사진 한 장 찍어줄래요?"

그들은 다정스런 포즈를 취하며 내게 자신들의 사진을 찍어주기를 바랬다.

밤 늦은 까페, 외로운 커피 한잔에 책 한권과 노트 한권.

시간을 떼우느라 노트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던 외로운 동양 여인은

그들이 가득 뿜어낸  헤이즐럿 향에 취해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아~~~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나의 간절한 눈빛을 읽었는지 그들은 선뜻 파이프를 내게 건네주었다.

흐~ㅂ... 흐~ㅂ...

호리병 안에서는 뽀로로록 소리만 날 뿐 내게서는 헤이즐럿 향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느긋하게 나를 기다려줬다.

깊은 호흡... 흐~~~ㅂ... 흐~~~ㅂ...

나에게도 헤이즐럿 향이 난다. 온 몸이 다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건너편에 앉은 꼬마신사는 내 모습을 보고 웃었다.

'그래!!! 여기는 여자들만 그러는 것도 아니네, 뭐.

 저렇게 꼬마도 나르길레를 즐기고 있잖아???'

 

허름하기까지 했던 파묵칼레의 조그만 까페 안에

커플과 내가 뿜어낸 헤이즐럿 향과 꼬마신사가 뿜어낸 사과향기가 가득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