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9월 터키

사진 한장의 에피소드 5 - 나의 고백

프리 김앤리 2011. 10. 21. 03:36

 

<9월 터키- 투어야 단체배낭 여행 터키 2기>

이건 내 이야기다.

 

터키라는 나라가 여행자들에게 매력을 끄는 이유는 서로 다른 두가지가 함께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동양과 서양, 아시아와 유럽, 이슬람과 기독교...

그리고 그 정점에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있다.

보스프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양과 서양으로, 아시아와 유럽으로 나누어지는 곳,

술탄 아흐멧 사원과 아야소피아 성당이 나란히 구시가지에 서있어 이슬람과 기독교를 한 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

사람들은 이스탄불에서 두 문명의 충돌을 만나고 또 두 문명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수 많은 사람들이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쓴 숱한 여행책들 중에

나에게 있어 여전히 최고의 책은 신영복 선생님의 '더불어 숲'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신영복 선생님의 삶과 철학을 넘어서는 여행책을 만난 적이 없고

그 책만큼 가슴 깊숙히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여행기를 읽어본 적이 없다.

오랜 수형생활을 정리하고 떠난 세계여행에서 선생님은 자신의 올곧은 생각을  책안에 고스란히 풀어놓으셨다.

그 중에서도 나를 가장 감동시킨 글은 이스탄불의 아야소피아에 관한 것이었다.

선생님은 아야소피아에서 두 문명의 공존을, 또 이슬람의 관용을 보았다고 써놓으셨다.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구나... 이렇게 세상을 바라볼 수도 있구나...'

십년도 더 전,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의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였다.

물론  해외여행이라고는 한번도 한 적이 없는 때였다.  

그래서 이스탄불은 늘 동경의 도시였고, 갈망의 대상이었다. 

 

십년도 더 지난 지금.

그동안 난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했고 이스탄불도 몇번씩이나 갔다 왔다. 

교사였던 나의 신분은 어느덧 여행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으로 바뀌어져 있다.

더구나 올해는 팔자에도 없던 대장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터키로 데려나오는 신분이 되었다.  

사람들을 인솔해야 하는 대장의 역할은 어떠해야 할까?

무엇을 해야할까?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멋드러지게 할 것인가?

도시간 이동을 착착 무난하게 진행하면 되는가?

한 도시 내에서 무엇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볼 수 있는지 한치의 빈 틈도 없이 잘 제시해 주어야 하는가?

나의 고민이었다.

 

딱 두번이었던 나의 패키지 여행 경험상, 유적지등에서 듣는 가이드의 장황한 설명은 정말 따분한 일이었다. 

들을 때 그 때 잠시뿐, 돌아서면 별로 기억에 남지 않는 어려운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복잡하고 어려운 역사 이야기는 몰라서도 힘들었고

오히려 중간중간에 웃기려고 날린 얄팍한 멘트들만 머리속을 빙빙 돌았다.

그러나 그것조차 그리 오래 기억되지 못했고, 기억할 필요조차 없는 것 들이 대부분이었다. .

고등학교때 한시간 내도록 눈물이 날 만큼 우리를 웃기며 수업을 하던 물리선생님의 강의 같았다.

돌아서고 나면 필요한 내용보다는 그 웃기던 표정과 내용을 뒷받침 하려고 갔다댄 주변 이야기들만 남아있을  뿐

결국 수업의 핵심은 우리가 다시 공부를 해야 했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느거들이 웃고 즐기는 사이에도 관성의 법칙은 설명되고 있다"며 또한번 우리를 웃기셨지만

정작 관성의 법칙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고 부수적으로 따라오던 시시껄렁한 이야기만 기억나던 것 같은...

내가 그럴까봐 두려웠다.

 

터키의 파묵칼레나 괴레메는 그 곳에 도착하기만 한다면 이미 대단한 자연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고

지중해의 푸른 바다는 딱히 설명이 필요없는 즐거운 놀이공간이었다.

이오니아 문명, 로마유적이 남아있는 에페소도 이미 광대한 자연속에 흩어져 있는 유적지어서

사람들을 우루루 끌고 다니면서 하는 구질구질한 설명이

오히려 사람들 스스로가 느끼는 감성의 타래를 흐트려 놓지 않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그냥 같이, 보이는 대로 느꼈다.

있는 그대로 함께 즐겼다.

어쩌면 대장의 임무를 철저하게 방기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스탄불만은 달랐다.

아야소피아는 더더욱 달랐다.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곳은 터키를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곳, 터키를 가장 매력적으로 만드는 곳이 아닌가?

 

지난 8월의 여행에서 나는 아야소피아 성당 앞에서 서서

같이 여행온 사람들에게 두 문명의 공존이니 이슬람의 관용이니, 잘난 척을 했다.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생각하고 있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서 나는 스스로가 모자라도 한참을 모자라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니야! 그래 여기서 어느게 기독교꺼고 어느게 이슬람 꺼라는 거야?

 회벽칠이 벗겨진 그림이 그래 어디어디에 있다는거야?

 저기 저 그림은 무얼 뜻하는거야?"

나는 이슬람의 관용을 설명할 수 있는 회벽칠이 반쯤 벗겨진 성화들이 다 어디에 있는지도 정확하게 몰랐고

그 그림의 세세한 부분이 무엇을 설명하고 있는지 자신있게 말해 줄수가 없었다 .

그래놓고 무슨 이슬람의 관용이니 문명의 공존이니 떠들어댄단 말인가?

사람들은 이리저리 흩어졌고 나는 또다시 나 혼자 십년도 더 전에 읽은 신영복 선생님의 책 구절구절을 떠올리는

한명의 여행자가 되어있었다.

사람들을 인솔하는 대장이 아니라 어느새 한 명의 낯선 여행자, 혼자 감상하고 혼자 감동하는 여행자가 되어있었다.

 

8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자 마자 열심히 공부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적어도 아야소피아만은 자신있게 준비하자.

자료를 찾았고, 줄줄이 정리해서 내 아이폰에 다운을 받았다.

마치 마음 든든한 컨닝페이퍼처럼.

그리고 가장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일부러 여행의 제일 마지막날에 아야소피아를 배치했다.

사람들을 우루루 모아놓고 나는 또 두 문명의 공존이니 이슬람의 관용이니 하는 대명제를 던졌다.

이번엔 들어가서 착착 설명할 참이었다.

박물관의 입구, 제일 먼저 보이는 성화 앞에서 설명을 아주 잠깐이나 했나?

돌아서보니 어느 새 사람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버렸다.

아니 그보다 내가 또 나의 임무를 망각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 모른다.

아야소피아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어느새 내가 대장이었다는 사실을 까먹고

또 한명의 여행자로 바뀌어져있었다.

성당의 유리창 너머로 이스탄불의 따사로운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한없이 넓게 퍼져있는 중앙공간에 서자 아늑한 기운이 내 온몸을 휘감았다.

중앙 제단 위로는 성모마리아와 예수님이 성화가 보이고 사방에 붙어 있는 청록색 코란 글귀들이 눈에 와 박혔다.

이슬람의 제단도 보이고, 기독교 제단도 보였다.

아~~~ 내가 지금 이스탄불에 있구나... 아야소피아에 다시 왔구나...

내 감정에 빠져있는 동안 사람들은 어느새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렸다.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은다는 것은 이미 불가능했다.

깃발을 들거나 하다못해 우산이라도 치켜들고 사람들을 모아 순서대로 착착 끌고다니면서

하나하나 설명하고 "그러면 이제 쭈욱 둘러보시고 몇시까지 어디로 모이세요"라는

전형적인 멘트도 하나 못날리고 다 놓쳐버렸다.

여행 며칠을 거치면서 이미 우리 팀원들은 내 여행타입을 잘 알고 있었고

자신들의 여행을 스스로 즐기는 방법을 터득해버렸다고 할까?

새삼스레 고전적인 패턴을 따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포기했다.

그러는 사이 누구는 이미 이층의 갤러리에 가있었고

누구는 이미 회벽칠이 반쯤 벗겨진 성화앞에 서있었다.

아야소피아의 높은 창문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소피아성당의 지붕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창 너머 기적처럼 서있는 블루모스크와 그 푸른 하늘을 찍고 있었다.

그래 그랬다.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나도 밖으로 나왔다.

아야소피아 성당의 담벼락을 따라 걸었다.

이제 몇 시간 후, 보스프러스 해협의 배를 타기 위해 애미노뉴 항으로 가기만 하면 됐다.

더웠다.

청바지 아래로 땀이 흘러 바지가 다리에 척척 휘감겼다.

더웠다.

옷가게에 들어갔다.

지중해 푸른 바다를 닮은 짙푸른 치마를 샀다.

그에 맞춰 하얀 윗옷도 하나 사버렸다.

그 자리에서 바로 갈아입었다.

약속시간보다 훨씬 먼저 애미노뉴항으로 나갔다.

푸른 보스프러스 해는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고

갈라타 다리 아래 고등어케밥을 파는 고등어배는 보스프러스 해의 파도를 타고 출렁거렸다.

내리쬐는 햇살을 받은 채 고등어배의 맞은 편 계단에 물끄러미 앉아 있었다. 

이스탄불 사람들은 바삐 어디론가 움직이고 있었다.  

한줄기 시원한 바람도 불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고등어케밥을 파는 곳으로 남자 1호와 쩡이 나타났다.

한참을 그냥 보고 있었다.

케밥을 산다, 오이피클을 산다, 자리를 잡는다....

움직였다....

그렇게 나는 다시 그들과 합세했다. 

히히덕 거리며 고등어에 식초를 치고 소금을 치고, 뼈까지 발라가며 같이 케밥을 먹었다.

조금있다 지하궁전을 갔다온 정 정이를 만났다.  

미리 봐둔 배 출항 시간.

선착장에 기다리니 모두들 나타난다.

시간이 없어 미처 다먹지 못하고 급하게 싸온 고등어케밥을

그냥 선 채로, 또 쭈그려 앉아서 맛있게들 먹는다.

...

아까 아야소피아 그 안에서 헤어지고 난 이후 지금 이 시간까지

그들은 각자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

지하궁전, 예니사원, 블루모스크, 트램을 따라 내려오는 길의 자그마한 가게들...

 

 

이 한장의 사진에 얽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터키의 매력이었으며,

이야기의 본질은 두 문명이 공존하고 있는 아야소피아 성당이었지만

정작 전개는

닭질한 대장의 이야기에 갑자기 사입은 푸른 치마에 흰 티 이야기이었으며

그 끝은 고등어케밥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은 딱 한마디다.

미안타.

그리고 멋지다, 당신들.

나의 고백은 미안하다는 것이지만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각자의 여행을 즐긴 당신들에게 보내는 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