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9월 터키

신이 요술을 부린 땅 - 터키 여행후기 3

프리 김앤리 2011. 10. 20. 06:00

 

뮌헨공항에서 서로를 소개할 때 그는 조그만 언론사에서 일하는 기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조중동 기자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인터넷 진보 언론의 기자이어서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그에게는 내가 먼저 이번 터키 여행을 같이 가자고 청하였다.

잘못하다가는 또 모두들 여자들만 데리고 여행을 가게될까 하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남녀가 같이 살고 있는 세상, 그래도 배낭여행이라고 떠나는데

남녀가 고루 섞여 있으면 좋겠다는 기대,

단 한명의 남자라도 이 남자라면 여자들이 여럿 있어도 문제없이 두루 다 챙길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다.

존경하는 한 선배의 표현을 빌자면 결이 아주 고운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은 딱 맞는 말이었다.

그동안 내가 그를 만났을 때는 항상 그보다 나이많은 사람들과 같이 만나서

아주 예의가 바르고 단정한 사람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같이 떠난 여행에서 그는 나이 많은 선배들과의 만남에서 보이던 단정함 뿐만 아니라

어린 사람들에게도 아주 친근하고 세심하게 빛을 발휘해주는 기대 이상의 선택이었다.

이후 한 명 더 보태진 다른 남자와 함께 그는 이번 터키 여행의 즐거움을 한껏 높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챙기면서도 함께 잘 어울리고

때로는 혼자 조용히 앉아 글을 쓰기도 하고

또 때로는 과감하게 무리에서 떨어져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기도 했다.

그가 우리 투어야 여행사 홈페이지에 올린 여행후기를 이 곳으로 옮긴다.

 

 

"터키요? 가죠머"

사실, 여행은 가을께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것저것 꼬여있는 복잡한 일이 대충 풀릴만한 때를 꼽아보니 10월 말 정도로 견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느닷없이 의사타진 연락이 왔는데, 난 금세 저리 대답했다.

늘 그렇듯. 경험칙상 달력보고 일정 조정하고, 이것저것 재보고, 특히나 통장 잔고까지 고려한다면

갈 수 있는 여행은 우이동 밖에 없다.

암튼 난 이렇게'터키 가기로 한 남자'가 됐다.

전화를 끊고는 다시 여러 복잡한 일에 매달렸다.

그때가 8월 중순께였을 것이다.

집에 들어가 잠깐 여권 들춰본 기억은 난다.

다행히 유효기간은 넉넉했다.

출국일은 금세 다가왔다.

중간에 투어야에서 두어번 전화왔던 것 같다.

이것 역시 늘 그렇듯 "예,예, 아 예에" 하고 끊었다.

여행은 시시콜콜 궁금한거 다 풀고 가면 재미없으니까. 별 준비없이 가야 서프라이즈하니까..

여행사에서 비행기만 잘 잡아두고, 모진 비바람 견딜 수 있을 잠자리는 봐두었을테니까.

하지만 나도 모른 사이

책상 앞 달력은 이미 9월로 넘어가 있었고

9월 8일부터 삐딱하게 죽 17일까지 그어놓은 화살표, 그 밑에 당당하게 써놓은 '터키'에 자꾸만 눈이 갔다.
9월 7일까지는 지옥처럼 살테다 맘 먹었다.

이제는 버릇이 됐는데, 출국 직전까지는 일부러 열라 바쁘게 일한다.

나중에 할 일 땡겨서 하기도 하고, 완전 몰입모드. '자진녹초기간'이다.

출국일 아침, 보따리 싸고 인천공항 리무진에 올라 공항 고속도로를 달리는 그 최고의 기분은

약간 피곤하고 찌뿌둥한 내 몸상태와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9월 첫날이었다.
3년 만에, 예고도 징후도 없이 '통풍'이란 놈이 찾아왔다.

2일,3일은 깽깽이로 다닐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었다.

맨 먼저 터키가 떠올랐다.
 '터키에 신 있다. 신. 그동안 내가 한 못된 짓 다 알고는 내 입국을 막으려나 부다'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당시로선 터키는커녕 오피스텔 1층 구멍가게 가기조차 힘들었다.

아이폰 홈버튼을 누르고 밀어서 잠금해제를 한 후 연락처를 불러, 대장의 이름을 띄웠다.

터치.

아이폰은 연결이 빠르다.

바로 연결중 화면이 뜬다.

잽싸게 종료 버튼을 눌렀다.

'일요일까지 기다려보자. 통풍은 이렇게 아프다가도 거짓말처럼 낫잖아.'

매일같이 통증부위인 발가락에 주문을 걸었다.

하지만 일요일 새벽까지 통증은 더 심해져만 가고 부위는 땡땡 부어갔다.
 '아 텄나?'
히키코모리처럼 침대에 우두커니 앉아 발가락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터키신이 마음을 움직인 걸까.

일요일 저녁이 되니 서서히 붓기가 빠지고 통증이 가시기 시작했다.

월요일 아침, 오예, 어느정도 진압 모드다.

출근하자마자 병원이라는 곳에 가서 주사맞고 처방까지 받았다.

처음있는 일이다.

화요일이 되자 이제 정상인처럼 두 발로 뚜벅뚜벅 걸을 수 있었다.

나.는.터.키.에.간.다.


수요일 저녁, 밤늦게 집에 들어가 옷장을 열고 집히는대로 마루에 휙휙 내던지기 시작했다.

욕실 선반도 털었다. 뭐 이정도면 사람 구색 갖추고 다니겠지 싶을 정도만.

그리고 바로 취침.
출국일 새벽에 일어나(정말 잘 깨진다. 출국일) 어제 쌓아놓은 짐들을 개키고 챙겨서 캐리어에 넣고 배낭에 쑤신다.

품목체크는 없다.

지갑과 여권만 확인하고 집을 나선다.

직장인들 출근 시각과 같은 시각. 묘한 쾌감을 느낀다.

평소 출근을 위해 시내로 나가는 9711 버스를 타던 바로 그 자리에서 오늘은 인천공항으로 가는 3300번을 탄다.

공항에서 서울팀 4명을 먼저 만났다.

전날 대장님께 '서울팀을 무사히 게이트까지 이끌고 오라'는 명을 받았었다.

'아..아..'목소리도 가다듬고 준비하고 있는데, 투어야 여행사 직원이 알아서 잘 안내한다.

뻘쭘한데...

어쩌지..어쩔까 A형답게 고민하고 있는차...그 4명이 정말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게이트에서 부산팀 6명, 서울팀 1명을 새로 만났다.

이렇게 12명, 트웰브. 예수 제자수, 한 타스, 더즌이 이번 여행 식구들이었다.

연령대가 다양한지라 혹여 호칭이 불편할수들 있을 것 같아 먼저 '남자 2호'라고 스스로 칭했다.

다행히 '남자 1호'도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내 여행 경험 중에 가장 많은 동료들과 함께 하는 거였다.

기대와 걱정이 딱 반반이었다.

경유지인 뮌헨에서의 간단한 인사, 추석 황금연휴에 몸뚱이 하나만 빼서 온, 어찌 보면 특이한 사람들.

눈마다 설렘이 어려있다.

그 설렘을 곁에서 느끼는 설렘은 또 얼마나 큰가.

그리고 다시 비행기, 터키 이즈미르로. 최고령 총무로 뽑히는 영광까지...

그리고 이어진 여정, 이즈미르 셀축 파묵칼레 괴레메 이스탄불 그리고 다시 인천!


이걸로 내 후기는 끝이다.

터키 좋다는 거야 귀에 못이 박였고, 사람들 잘 만났으니 이번 여행 기쓰갈 일이 있었겠는가.

나마저 셀축의 위대한 유적이며, 괴레메의 고즈넉함이며

파묵칼레의 감동이며 이스탄불의 관용까지 새삼 논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뭐 난 파묵칼레의 석양을 보고 조용히 꽤 많이 울었다,

이스탄불 광장에 앉아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를 하도 번갈아 보다가 급기야 목디스크 현상이 왔다...

뭐 이런 얘기야 일기장에 쓰면 되는 것이고....

좋다 나쁘다는 지극히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무의미...

케밥 피데 괴즐레메 돈두르마...이런 먹거리들이야 난 다 맛있었지만,

난 맛없는게 별로 없으므로 그리고 맛이야 정말 상대적인 개념이므로 여기서 줄.(개인적으로 쿰피르 파는 곳을 만나지 못한 건 아쉽)

다만,

터키는 신이 불평등한 요술을 부린 곳이요, 꽤 많은 것을 베푼 땅이라는 것.

그리고 열흘동안 내내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

그런 터키가 다행히 나를 잘 안아줬고 어루만져줬다는 것, 내게 베풀었다는 것, 퍼줬다는 것,

하여 나는 편안해졌고 치유됐고 반뼘 정도 또 컸다는 것.

지금도 내 마음속에는 터키 국기의 바탕인 빠알간색이 잔뜩 배어있다는 것..이것만은 확실하다!


여행을 다녀온 나는 -늘 그렇듯- 심드렁하다.
  "터키 갔다왔다매? 어때?"
  "좋아"
  '뭐가 제일 좋아"
  "다 좋아"
  "그래도 뭐가 제일..."
  "아 니가 가봐. 여행은 늘 다 좋아. 이별여행 빼곤"

하지만 난 속으론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 김승란 알아? 안진희 알아? 장은 알아? 조동운 알아? 정경혜 알아? 아정림 알아? 고운정 알아? 배윤정 알아? 김영화 알아? 임영신 알아? 노혜미 알아?

모르지? 내가 터키에 대해 백날 떠들어 봤자야. 그 사람들 모르면...난 그래서 더 좋았다."

이쯤에서, 우리의 김승란 대장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냥반은 우리에게 멋진 풍광따위 감상하게 가만 두지 않았다.

그동안 그가 수십개 국을 다니며 경험한 감상의 조각들은 우리에겐 교과서와 참고서, 과외선생을 합쳐놓은 교본이었다.

대열에서 이탈한 나를 축복했던 그였다.

좋은 궁합이었다.

세계 배낭여행 대장 올림피아드가 있다면, 한국 대표는 그다.


여행에서 돌아오며 흔히들 '일상으로의 복귀'를 끔찍스러워 한다.

하지만 난 반대.

우리는 늘 여행자, 항상 길 위에 서있다.

떠남과 있음의 차이만 있을 뿐.

여행의 반대말은 '감히'일상이 아니다.

여행의 상댓말은, 없.다.


빡빡한 사투리로 여행 내내 흥을 돋아주신 안샘,

이슬람 입문 코앞 장샘, 터키 남자로 모자라 그리스까지 원정 나선(뭐 좀 건진 거 있남?) 경혜,

바닥과의 마찰을 끝내 거부한 치마녀 혜미, 괴레메 읍내 지도를 눈감고도 그려낼 영신,

우리 귀국해서 작별인사 나눌 때 벌써 짐 찾고 있던 잽싸 영화, 진지한 겸둥이 남자1호 동운이형,

나도 모르게 '무스타파 아정'으로 번호 입력한 현지인 정임,

별 해괴한 뻥을 치고 터키행을 감행한 K 아무개 한 악기 학원 원장님(이렇게 길어지나네...),

괴레메 밤거리를 헤메다 결국 숙소 앞에서 주저앉던 윤정,

모두 고맙고 감사하다. 좋은 인연이다.

억겁의 윤회를 거치고서야 옷깃 한번 스칠 정도의 인연이 만들어진다는데, 우리는 얼마나 대단한 인연인지....

다시 길위에서 만날 것을 믿으며...

그립다 터키!


이만 총총

+1) 터키에 다녀와서 약간의 변화가 있긴 하다.

     마트에 누워있는 버섯만 봐도 감상에 젖고, 한통에 4000원씩이나 하는 메론을 보면 '쳇' 썩소가 나오고,

     장독대 항아리를 보는 순간엔 오합마를 들어 중간을 딱 내리쳐 반 토막 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샘솟는다.

     또하나 배 뽈록 나오고 샌들 끌고 다니는 남자를 보면 터키의 '그'가 생각난다.

+2) 오우, 투어야 여행사 인솔자 모집 공고 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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