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지금은 여행중 /11월 중국 상해

'서울 인사동 + 부산 감천동' 상하이의 보물, 타이깡루

프리 김앤리 2011. 12. 18. 14:37

< 십일월 중국여행, 상하이 3 >

여행을 다녀와서 가만 생각해보면 그냥 어슬렁어슬렁 다녔던 뒷골목이  마음에 가장 남아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상하이의 타이깡루가 딱 그랬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좀 더 어슬렁어슬렁 거렸어야 했다.

마음이 좀 더 여유로웠다면 길가의 어느 까페에 앉아 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그냥 노니닥 거렸어야 했다.

빽빽한 골목과 좁쌀같이 들어앉은 가게들, 그리고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떠들썩함을 객관화 시켜놓고 나는 그들을 즐겼어야 했다.

하여튼 단체로 움직인 나는 쫓기는 시간으로 마음이 급할 수 밖에 없었고 무질서한 그 골목의 분위기와 꼭 맞게 허겁지겁 골목을 헤매다가 돌아나온 것이

내내 후회되는 상하이의 뒷골목, 타이깡루가 눈에 밟힌다.

 

눈돌아가는 고층빌딩들이 높이 솟아있는 황포강변의 발전된 상하이와는 또 다르게

이 동네의 골목은 예전의 집들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상하이 건축의 특수양식, 스쿠먼(石庫門) 가옥들이다.

스쿠먼 양식이란 테두리를 돌로 쌓아올린 저택 양식으로 전통적인 나무 골격 구조에 벽돌 벽을 가미한 새로운 형태의 주택들이다.

석재를 사용하여 바깥 문틀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운다.

 

스쿠먼 양식의 기원은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 중엽 태평천국의 난 등으로 세상이 어수선 할 때 불안감을 느낀 당시 중국의 부호들과 외국인 거주자들이 난세를 피해

상하이로 모여들어 임시 거처로 지어진 건물들이다.

그래서  중국식 주택 양식과 서양식 건물 양식이 혼합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화장실이나 욕실은 공동으로 사용하였고 세월이 흐름에 따라 주택이 노후해지자 이곳은 점점 빈민촌으로 전락했다.

북경의 후통(故同) 거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상하이 시청은 빈민촌이었던 이 곳의 개발 계획을 세우던 중 여기를 화랑거리로 바꾸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10년전의 일이다.

좁은 골목의 입구에 화랑 몇개와 까페 한개 정도를 입점시켰는데 처음에는 그냥 그랬다. 그림을 팔고 사는 사람이 그저 조금씩 드나드는.

그런데 지금은 이 곳이 상하이의 가장 Hot한 곳으로 주목받고 있다.

원래의 건물을 그대로 유지한 채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골목에

리모델링한 식당, 유럽식 까페, 노천 바, 옷 악세사리등 없는 게 없는 아주 흥미로운 길로 바뀌어 있다.

 

 

 

 

 

 

 

 

 

 

 

 

 

 

 

 

 

 

 

 

이리저리 막 헤매었다.

들어온 입구만 기억 날뿐 다음은 어디로 가야할 지 이 길의 끝에는 다시 빠져나갈 길이 나올런지

그냥 발길 닿는대로 걸어다녔고 북적이는 사람들에게 밀려다녔다.

하나하나 가게마다 앙증맞은 물건들이 즐비했지만 마음편히 즐길 시간이 우리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어느 옷가게 앞.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발견한다.

숙제처럼 카메라를 눌러대고 있는 모습이다.

 

 

 

어디선가 읽은 글이다.

모방의 달인 중국에는 요즘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단다.

 "짝퉁으로 세계를 제패하자."

 

Made in China가 부끄러움의 대명사가 되어 있고, 중국제 하면 짝퉁으로 통하는 현실을 오히려 되받아치는 발상이다.

이름하여  모조품이라는 뜻의 산짜이(山寨) 운동..

원래 산짜이란 중국 수호지에 등장하는 108호걸들이 양산박에 모여 만든 '산적들의 소굴' 이라는 뜻이다.

중국 산짜이 운동(운동이라고 까지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흐름 정도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은

중국의 소기업들이 세계적인 상품들을  모방하여 만든 일명 짝퉁으로 세계 시장에 승부를 걸겠다고 표방하는 것이다.

하기야 요즘의 짝퉁들은 예전보다는 훨씬 더 세련되어 짝퉁에도 수준이나 계급이 있다는 말이 나도는 정도니 충분히 이해는 할 만 하다.

 

물론 타이깡루의 소호들이 짝퉁들로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사실 세세하게 볼 시간이 없어 정확하게는 알 수 없다. 그냥 휙 지나치면서 받은 느낌이다. )

그러나 조그만 가게들의 밀집체였음은 틀림없고 이곳의 물품들을 전세계 곳곳에서 본 기억이 났던 건 사실이고

산짜이 운동이라는 일련의 흐름들과 딱 맞아떨어졌던 것 또한 진실이었다.

밀려오는 중국의 힘을 거역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을 주던 거리, 그곳이 타이깡루였다.

 

게다가 타이깡루는 혼돈이 주는 매력을 충분히 발산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늘 질서있고 느긋한 서양사람들이 이 곳을 지나치지 못하는 점 또한 바로 이런 무질서와 혼돈일수도 있겠다는 느낌.

나 또한 이곳에 들어서면서 어딘지 정신이 없으면서도 덩달아 가슴이 벌렁벌렁 뛰는 오묘한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아주 복잡한 거리에 그냥 가만 앉아있고 싶다는 생각, 그래서 여기서 시간을 딱 멈추고 싶다는 생각말이다.

 

 

시간이 딱 멈추어버린 듯한 느낌은 이런 거였다.

미로같이 얽혀있는 빼곡한 골목길에 바삐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여기저기 고객을 불러들이는 흥정의 바쁜 몸짓,

무언가 주문하고 계산하고 먹고 마시고 부산스런 한 가운데 문득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하늘,

복잡한 전선 사이로 널려있는 이런 빨랫줄과 거기에 널려있는 늘어진 옷들. 비현실적인 장면.... 아니 가장 현실적인 장면.

 

상하이의 타이깡루는 고미술품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어 외국인들이 반드시 찾는다는  점에서는 서울의 인사동 골목이요, 

서민들의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 볼 수 있어 최근 사진작가들의 성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딱 부산의 감천동이다.

비현실과 현실이 겹쳐있는 '서울의 인사동 + 부산의 감천동'이다.   

 

 

복잡한 골목 아래 거리와는 달리 이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층.

바로 이 순간을 딱 멈춰버리고 싶은 그런 느낌.

 

삶이 녹아있는 할머니들의 이 눈빛과 공존하는 복잡한 골목. 상하이의  타이깡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