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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훈족과 아틸라

프리 김앤리 2013. 6. 7. 15:00

 

 

훈(HUN)족은 로마제국 말기인 375년부터 469년까지 거의 100년간 유럽의 상당 지역을 지배하면서

유럽인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공포와 많은 이야기 거리를 안겨준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연구된 학설에 따르자면, 훈족의 기원에 대해서 동양의 흉노족이었을 것이라는 설,

몽고계, 말갈 족 설 혹은 중앙 아시아의 터키계나 이들 아시아의 여러 유목 민족들이 서로 섞인 부족이라는 설,

그리고 더 나아가 과거 고구려와 신라 지역에 거주했던 한 민족의 일파이었을 거라는 설 등

그 기원을 둘러사고 여러 다양한 견해들이 대두되고 있다.

훈족의 여러 인물 중 아직까지 유럽인들에게 그 명성과 공포가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인물로는

제국을 건설한 아틸라(Attila 406~453)를 들 수 있다.

동로마의 기록에 따르자면 당시 아틸라의 훈족 부대는 약 50만명 이상 이었으며

주요 근거지는 오늘날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접경 지역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대규모 병력을 기초로 아틸라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약 8년정도 유럽을 지배하였는데

당시 그의 영토가 중부 유럽과 발칸 반도는 물론

남으로는 프랑스 그리고 동서로는 흑해부터 다뉴브 강과 발틱해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지역을 관할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유럽인의 눈에 비친 훈족과 아틸라>

훈족의 왕, 아틸라에 대한 유럽인들의 시각은 

그의 별칭인 '신의 징벌'만큼 잔인하고 포악스럽게 묘사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유럽인의 시각속에 아틸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3세기 경 씌여진 독일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 Nibelungenlied" 들 수 있다.

'니벨룽겐의 노래'는 당시까지 전해 내려오던 유럽 내 영웅 설화들과 국가의 흥망성쇠 이야기를 주요 소재로 하고 있으며

다양한 복수와 적의 등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아틸라는 에첼(에트젤, 아틀리 등 다양하게 묘사되고 있음)로 표현되고 있는데

자신의 가족을 죽인 에첼에 대한 복수심에 불탄 크림힐트가 에첼과 정략 결혼 후에 그를 살해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실제 역사 속에서 아틸라는 그가 멸망시킨 게르만족의 부족장 딸인 일디코와 결혼식을 한 당일 사망하였다고 나와 있으며

그의 죽음에 대한 여러 불분명한 이유와 더불어 일디코는 작품에서 크림힐트로 묘사되어 있다고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여러 설에 따르자면, 

      고대 시대엔 단순한 개펄 지역에 불과했던 베네치아가 중세의 중요 상업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탈라 기병부대의 공격을 피해 베네치아 늪 지대로 몰려 왔던 로마 피난민들이

      도시를 세우게 되면서 부터라고 알려지고 있다.

 

      또한 그의 죽음 이후에도 이탈라는 유럽의 여러 소설과 연극 등에서

      잔인한 폭군의 대명사로 불리며 자주 등장하곤 했는데

      14세기 이탈리아 서사 문학의 대명사로 손꼽히고 있는 단테의 '신곡'중 지옥편에서도

      지옥에서 고통받고 있는 아틸라가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역사와 인물로 본 동유럽 들여다보기>에서 발췌

 

 

 

그런데 나의 아틸라는 좀 다르다.

부다페스트는 지난 2009년 세계여행할 때 갔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부다페스트는 '추위'였다.

우리가 있던 며칠동안의 부다페스트에는 내내 한겨울이 시작되는 찬바람이 불고 있었고 치렁치렁 비가 내렸다.

황홀하다던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에게 부다페스트는 손시려움 바시려움이었고 따뜻한 국물의 굴라쉬였고, 세체니 온천이었다.

도대체 삶이란게 뭔지, 우리 여행의 질이란게 뭔지... 그래서 결국엔 삶의 질이란게 뭔지가 남편과 나의 주제였다.

그 때 만난 게 아틸라였다.

그 중 한 토막을 옮긴다. 

 


   '한때 잘 나갔을 게 눈으로 보이는 헝가리','한 나라의 흥망성쇠' ,'삶의 질', '영국' ...

   처음 눈에 들어오던 부다페스트의 위엄있는 건물들에서 시작한 우리의 이야기가 한참 삶의 질까지 진행될 무렵...

   이런 동상을 만났다.

   그것도 눈부시고 화려한 국회의사당 건물앞에서.

 

   "아하!! 국회의사당 앞에 저렇듯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을 조각해놓은 게 상징하는 바가 크다, 그치?

    일만 죽어라고 하지 말고 인생을 자유롭게 즐기라는 뜻 아니겠어?"

 

   그동안의 이야기에 푹 빠져있던 내가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정말 편안한 포즈의 동상을 보고  한발 앞서 먼저 상상을 해 버린다.

   "멋지다, 역시 헝가리야.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니까...."

 

   그런데 동상옆에 붙어 있는 헝가리 글자를 다른 여행자한테 물어보니까  예전 헝가리 혁명가인데 이름은 '아틸라'.

   '아이구, 또 내가 한발 먼저 나갔네?'

 

   "그게 아니라 뭐 아틸라라는 헝가리 혁명의 지도자라네?
   "그래? 이 동상이 아틸라라고?"

   남편은 아주 반색하며 되묻는다.

 

   그러면서 고대의 '아틸라'라는 사람은 훈족의 출신으로

   당시 가장 번성하던 로마를 공격해 로마를 한때 로마를 점령했던 훈족 지도자란다.

   물론 여기에 있는 아틸라는 옷 차림새를 보니 고대의 족장, 아틸라는 아닐꺼고

   현대 헝가리 혁명의 지도자일거라고...

 

   '일하는 국회' ' 노동시간, 노동강도' ' 휴식시간, 삶의 질' '자유'...

   뭐 이런 거하고 연결할수 있는 동상은 아닌 것 같다.

 

   또 하나 배웠다.

   훈족, 아틸라...

   '무식쟁이 마누라 데리고 다닌다고 고생한다, 우리 남편...'

 

   그래도 나는 아까 했던 터무니는 없지만 나의 상상과 추측이 더 마음에 든다.

   '국회의사당 앞에 있는 자유로운 인간의 모습, 그리고 다시 생각하게 하는 삶의 질...'

 

아틸라라는 이름은 내게는 완전 처음이었고 남편에게는 로마제국 시절 유럽을 덜덜 떨게 만든 훈족의 영웅이었다.

부다페스트의 국회의사당 앞에 아주 멋지게 만들어 놓은 동상 앞에서

아주 한참을 삶의 질과 강대국의 흥망성쇠에 관한 이야기들을 했던 기억은 난다.

 

 전문을 다 보시려면 : ☞ T198 (10월1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그런데 돌아와서 안 사실은  ...

국회의사당 앞에 조각해 놓은 그 아틸라는 헝가리의 위대한 시인이었단다.

그의 많은 시가 다뉴브강을 노래했는데,  다뉴브 강가의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 그의 동상이 만들어진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란다.

 

                                                                                                                                                <2013년 7월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여행준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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